우고 차베스 14년, 니콜라스 마두로 8년, 베네수엘라에선 도합 22년간 포퓰리즘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데 세계 최대 원유매장국인 이 나라에선 땅속의 자원에서 지대(地代)를 걷어 국민들에게 나눠 주며 포퓰리즘을 시행한지 약 20여 년 동안 국가 경제는 거덜이 났습니다.
지폐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국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음식물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한편 인구의 10%가 생존을 위해 이웃나라로 밀입국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인데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민주화 요구가 강한 나라로 평가받지만 그런 나라에 독재적 장기집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의 시조새 격인 차베스는 부패한 독재정권과 싸워 인민에게 빵과 자유를 준 혁명가였고,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권력에 맛을 들이며 서서히 독재의 길을 걸으면서 그의 대중적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의 후계자 마두로 시기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마두로는 권력을 유지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서양 학자들과 언론들은 베네수엘라 포퓰리즘 정권에 관한 배경에 대해 많은 논문을 쏟아냈는데, 이들 연구의 대체적인 일치점은 포퓰리즘 정권이 국가제도를 자기들 입맛대로 개정하며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실입니다.
차베스와 마두로의 두 정권은 사법제도, 선거관리위원회, 국영석유회사, 군부, 언론 등을 장악하면서 민주적 요구와 야당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봉쇄했는데 게다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지역단위 조직을 강화해 콘크리트와 같은 지지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차베스의 독재적 장기집권 첫 번째 과정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사법부 무력화를 시도했는데
그는 1999년 정권을 잡자마자 헌법 개정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얻고, 곧이어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면서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합법적 의회와 대치했습니다.

두 의회의 정통성에 대한 분쟁은 대법원에 올라갔고 차베스는 대법원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동원했는데 그는 8명의 대법관을 모두 쫓아내고, 제헌의회가 유일한 의회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베네수엘라의 대법원은 독립성을 잃게 되는데 당시 남미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었던 세실리아 소사(Cecilia Sosa)는 “법원이 제헌의회의 사형집행에 앞서 자결을 선택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제헌의회는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를 6년 연임으로 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 차베스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준 것이었습니다.

차베스의 독재적 장기집권 두 번째 과정으로 대기업을 장악해 복지재원을 확보한 것이었습니다.
자산가와의 경제 전쟁을 선포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최대 식품업체인 엠프레사스폴라를 향해 노동자들을 부추겨 정부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며 100여 톤에 이르는 쌀을 강제 압류하는 등 민간기업의 자산을 강제 몰수하는 한편 1976년 당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총괄하는 단일 회사이자 국가 GDP의 절반, 수출의 95%를 차지했던 국영석유회사(PDVSA)를 차베스 정권은 2003년 국영석유회사의 파업을 무력 제압하고
이를 계기로 노동자 약 2만 여명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동시에 이사진을 친 정부 인사로 교체해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회사의 이익금을 국가재정으로 전환하는 등 국가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 시켜버려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차베스의 독재적 장기집권 세 번째 과정으로 정치집단의 무장화를 꼽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선 경제위기와 독재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도 차베스와 마두로 정권은 끄덕하지 않았는데 그 배경에는 민간으로 구성된 준군사조직이 활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사설 무장조직은 차베스가 볼리바르 서클(Bolivarian Circle)이라는 친위대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는데 2002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서클 회원들은 대통령군을 에워싸고 차베스를 복귀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 친위대가 확대되면서 마두로 정권에 이르러서는 60여개의 콜렉티보까지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에 대해 테러를 가하거나 집단적 린치를 자행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베네수엘라의 콜렉티보(Colectivo)라는 좌파 조직은 버스조합, 택시조합과 같은 노동조합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도시빈민가와 농촌지역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화 시위대를 저지하는 결사대 역할도 했는데 차베스는 이 조직을 “조국을 수호하는 근간”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총을 쏴 학생들을 겁주고 약탈하는 일도 이들의 주된 업무이기도 했는데 2019년 전기회사의 태업으로 정전소동이 벌어졌을 때 마두로는 “이제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저항에 나서야 할 때”라며 콜렉티보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차베스의 독재적 장기집권 네 번째 과정으로 언론장악을 꼽을 수 있습니다.
RCTV(Radio Caracas Televisión)는 1953년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TV방송에 진출한 민영방송이었는데 2002년 반 차베스 쿠데타 때 차베스의 건재함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2007년 차베스 정권은 RCTV의 재면허를 인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차베스는 정계 복귀 후 이 방송을 ‘파시스트’라고 욕하며 방송사가 쿠데타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06년 방송면허 재심의 과정에서 RCTV의 면허를 연장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고 대법원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은 합법이라고 동조했습니다. 결국 RCTV는 2007년 54년 동안의 전파송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RCTV는 시범케이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권에 반대하는 언론은 폐쇄를 각오해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베네수엘라 언론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했고 따라서 2015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베네수엘라의 언론자유도를 180개국 중 137위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차베스의 독재적 장기집권 마지막 다섯 번째 과정으로 권력 견제장치를 무력화 시킨 것이었습니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는 차베스의 지병이 악화되면서 갑작스럽게 권좌에 오른 인물인데 그는 2013년 보궐선거에서 1.5%의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차베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약체로 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마두로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형식적으로 독립된 각 기관의 수장 자리를 볼리바르주의자에 의해 채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법원,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검찰청 등 헌법상 독립기관들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대중주의에 함몰되어 야당의 공세를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습니다.

일례로 베네수엘라의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2015년 당시 총선에서 야당연합이 109석, 마두로 지지 여당이 55석을 얻어 집권여당이 완패했는데 1999년 차베스 집권 이래 16년 만에 이뤄진 첫 야당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야당은 마두로 소환을 위해 필요한 수의 서명을 받아 선거관리위원회에 국민투표 실시요구안을 제출했는데 문제는 선관위 위원들 대부분이 마두로가 심어 놓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선관위는 야당 요구의 적법성은 인정했지만 마두로의 퇴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일정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취소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2017년 마두로는 차베스가 써먹은 수법을 다시 써먹었는데 그는 합법적 의회를 무력화시킬 요량으로 대통령 비상조치를 발동해 제헌의회를 소집했고 야당이 제헌의회 선거를 보이콧한 가운데 마두로 지지파들로 제헌의회가 구성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제헌의회를 합법기구로 인정하고, 합법적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습니다. 결국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법원마저 정권의 시녀가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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