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막말과 극단적 정책이 오히려 인기 유지 요인이 되고 있다. 필리핀 두테르테의 거침없는 언행이 역대 정권이 보여 온 허약한 리더십에 질린 필리핀 대중들에게 ‘용감하고 행동하려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 말,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두테르테는 ‘막말’로 세계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는데,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치고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를 방문해서는 “히틀러는 유대인 300만 명을 학살했다”며 “지금 필리핀에는 마약중독자가 300만 명이 넘게 있는데, 이들을 도살하면 기쁠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독일에 히틀러가 있었다면 필리핀에는..”이라며 자신을 가리킨 뒤 “다음 세대를 마약중독의 파멸에서 구해내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두테르테의 ‘히틀러’ 발언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아다마 디엥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은 “인류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두테르테의 발언은 비슷한 범죄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미국은 물론 각국의 비난이 이어지자 두테르테는 급히 자신의 막말을 주어담았는데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은 자신이 히틀러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며 “홀로코스트의 희생을 폄하하지 않는다” 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두테르테의 막말은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도 이어졌는데 두테르테는 오바마를 향해 “나에게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개새끼라고 응수하겠다”라고 하는 한편, “오바마가 필리핀 인권을 거론하기 전에 흑인을 마구잡이로 쏘는 미국 경찰관들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논란이 거세지자 두테르테는 바로 사과를 했지만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등거리 외교’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취임 전부터 “범죄자를 모두 처형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두테르테는 자신의 말처럼 취임 후 100일 동안 마약 관련 범죄자 3500명 이상을 처형했는데 하지만 범죄자에 대해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묻지마’식 사살이 이뤄지고 있어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경찰당국 내 비밀경찰이 조직돼 마약범죄자를 처단하는 ‘암살단’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필리핀 비밀경찰을 만나 어떻게 마약범죄자를 비밀리에 살해하는지 상세한 과정을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각 16명으로 구성된 암살단 10개 팀을 운영하고 이들은 마약중독자, 거래범 등의 명단을 입수해 암살작전을 펼친 것 이었습니다.
경찰 암살단은 주로 밤에 검은색 옷과 모자 차림으로 용의자의 집 앞에서부터 그를 추적하는데 이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용의자를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시신은 옆마을에 버리거나 다리 아래 던져놓았는데 지역 언론에서 알 수 있도록 시신의 얼굴을 석고테이프로 감고 ‘마약왕’ 또는 ‘마약밀매자’라는 글씨를 남겨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에 이어 ‘담배와 전쟁’도 선포했는데 그는 국민 건강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두테르테 정부가 싱가포르처럼 법치를 앞세워 시민들을 과도하게 제약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번에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보건부는 공공장소는 물론 개인차량 안에서의 흡연까지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두테르테는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금연조치에 집착했는데 직접 담배를 피우는 운전자를 쫓아가 잡아내거나 금연 지시를 거부한 관광객에게 꽁초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도를 넘어선 단속과 처벌로 여론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도 필리핀 내 두테르테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높아가는 실정입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 취임 이후 한때 지지율이 91%에 달하기도 했는데,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두테르테는 86%의 신뢰율을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지역별로 볼 때 수도 마닐라 시민의 신뢰율이 취임 직후 92%에서 현재 81%로 비교적 크게 떨어졌으나, 다른 지역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독재자’ 별명까지 얻었지만 두테르테가 필리핀 내에서 이처럼 탄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테르테는 대선 선거전 초반에만 해도 군소 후보 취급을 받았는데 그러나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엄단하고 일부 재벌 가문에만 집중된 부의 편중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유권자들은 필리핀의 뿌리 깊은 족벌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축출된 뒤에도 필리핀에서는 100여개 가문이 정치권력을 독점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특권층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두테르테는 엘리트주의와 족벌에 대한 반감을 자신의 표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정장 대신, 파인애플 섬유로 만든 전통의상 ‘바롱 타갈로그’와 검은 면바지를 입었는데 그는 유세 현장에서도 폴로셔츠와 면바지를 즐겨 입으며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취임 후 인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의 막말과 극단적 정책이 오히려 인기 유지 요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두테르테의 거침없는 언행이 역대 정권이 보여 온 허약한 리더십에 질린 필리핀 대중에게 ‘용감하고 행동하려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광산벌목 등으로 살 곳을 잃은 원주민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방안을 마련해주는 등 두테르테 대통령은 각종 진보적 사회정책을 펼친 것도 서민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또 막말과 기행 속에서도 실리외교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살피는 등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두테르테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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