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이야기

특수부대 저격수 사격달인의 탄생과 역사

역사와 여행 2021. 7. 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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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sniper)는 군사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인데, 한 발의 총알로 적을 무력화하고 적 부대에 공포심을 심어주며, 적진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저격수는 “일반 보병보다 표적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격소총 등 총기로 적을 정밀 조준해 무력화하도록 훈련을 받은 요원을 가리키는데 사전적 정의는 이처럼 간단하지만 실전에서의 위력은 가히 위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격수의 임무는 단순히 적의 병력 숫자를 줄이는 목적만이 아니라 적의 작전에 심대한 지장을 줄 수 있는 지휘관이나 통신병, 기관총 등 위력적인 무기체계를 다루는 요원, 적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야전 의무병 등 전술적 가치가 높은 적은 찾아 무력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저격수가 쏘는 한 발의 총탄은 한 명의 적을 무력화하는 수준을 넘어 몇십, 몇백배의 전술적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영어로 저격수를 의미하는 ‘스나이퍼(sniper)’라는 단어의 기원은 야생조류 중 하나인 도요새(snipe)라는 새에서 비롯하는데 도요새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에 위장 능력도 뛰어나 사냥꾼에게 잘 발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깃털 중 햇빛에 노출된 부분은 어두운 색, 노출되지 않은 부분은 밝은색의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은폐가 잘 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다가오는 인간의 기척을 눈치 채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비행 패턴이 상당히 불규칙하고 변화무쌍해 이 때문에 사냥꾼이 총기를 조준해서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합니다.

'도요새'

이처럼 당시 수렵용 총기로는 도요새를 제대로 사냥하기 어려워 다른 조류 사냥과 구분되는 ‘도요새 사냥(snipe shooting)’이라는 용어가 별도로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 약칭이 바로 ‘스나이핑(sniping)’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도요새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사냥꾼을 ‘스나이퍼(sniper)’로 부르게 된 것이라는 추론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나이퍼는 ‘사격술과 위장술에 대단히 뛰어나며 고도로 숙련된 사냥꾼’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숨겨진 곳에서 저격을 하는 사수를 가리키는 용어로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저격수 운용에는 정확도가 높은 총기가 필수적인데 과학기술과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총기나 나타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저격수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강선총포인 라이플(소총)이 개발되기 전의 화기는 총신 내부에 강선이 없는 활강총포였는데 활강총포는 장거리에서 명중률이 매우 낮았습니다.

총기의 높은 명중률은 강선총포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는데 강선총포는 총열 안쪽에 나선형의 강선(rifling)이 파여 있어 이로 인한 요철 때문에 발사되는 총알이나 포탄에 회전이 생기게 되어 총구나 포구를 벗어난 총탄이나 포탄은 이 회전 덕분에 요동 없이 안정적으로 비행해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머스킷 소총을 비롯한 활강총포에는 둥근 탄환만 장착할 수 있었지만, 라이플에는 탄도 궤도의 안정성 덕분에 뾰족한 탄환도 쓸 수 있게 되면서 이는 라이플의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라이플은 계속 발달해 명중률이 더욱 높아지면서 비로소 저격수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형태의 저격수가 등장한 최초의 전쟁은 18세기 후반에 벌어진 미국 독립전쟁인데 1777년 9월에 벌어진 사라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서 대륙군은 500명 이상의 저격수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지휘관이었던 대니얼 모건의 이름을 따서 ‘모건 소총부대’로 불렸던 이 부대는 사격 솜씨가 가장 좋은 병사들을 뽑아 구성했으며 영국군 장교와 포병을 골라 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저격수들은 주로 나무 뒤에 숨어 초기 모델의 라이플로 200야드(약 182.88m) 이상 떨어진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도록 훈련받았는데 대륙군 저격수 티모시 머피(Timothy Murphy)는 이 전투에서 300야드(약 274.32m) 거리에서 영국군 지휘관인 사이먼 프레이저 장군을 사살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등 뒤에서 적을 사살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1777년 9월에 벌어졌던 브랜디와인 전투에서 영국군 장교 패트릭 퍼거슨은 훤칠한 키에 위엄 있는 외모를 지닌 대륙군 장교가 자신의 라이플 조준선에 들어왔음에도 그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이유로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퍼거슨은 그 키 크고 위엄 있는 외모의 대륙군 사령관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신사적인 저격수의 한 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꾼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