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이야기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국과 미국 누가 더 손해일까?

역사와 여행 2021. 6. 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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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호구가 되지 않겠다”며 툭하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었던 트럼프 미 행정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최근 “전 세계 미군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바이든 신행정부의 한마디에 한국이 또 다시 술렁거렸는데요. 재검토 대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던 탓에 혹여나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미군 감축설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닌 게 지난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문구가 12년 만에 빠진 것부터가 불안한 징조였는데 물론 당시에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쇼’라는 해석에 무게가 더 실렸습니다. 하지만 동맹주의자 조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믿는 구석’ 하나는 주한미군 규모를 일방적으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한 미국의 ‘국방수권법(NDAA)’과 “중국 견제가 최우선인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 시킬 가능성은 낮다”라는 이른바 ‘대중국 견제 카드’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안전장치는 아닌 것이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축소가 국가 안보에 부합하고 이를 한국과 협의했다’는 사실만 의회에 증명하면 국방수권법은 아무 제약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미국이 중국 견제를 꼭 한반도에서만 해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 주한미군 일부를 빼서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 배치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미연합훈련중인 국군, 미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각에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주한미군 축소, 더 나아가 철수까지 고려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주한미군 축소를 협상카드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 됐든, 주한미군은 과연 누굴 위해 있는 것인지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군이 한반도에 처음 주둔한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인데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각각 분할 점령했던 때였습니다. 당시 7만7,000여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500명만 남겨두고 사실상 철수했는데 하지만 이듬해 소련과 중공군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6ㆍ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약 30만여 명을 재 주둔시켰고 그렇게 주한미군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960년대 6만여 명 수준이었던 미군은 이후 숱한 축소와 철수 논쟁으로 오늘날 약 3만여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무력 개입하지 않겠다”라는 일명 ‘닉슨 독트린’을 바탕으로 베트남전 철군 계획을 밝히면서 미 7사단 약 3만여 명을 철수한 것이 대표적인 일이었습니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이후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로 해외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을 의식해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기간 단 한 명도 줄이진 못했지만 1992년 냉전 종식으로 주한미군은 또 다시 대폭 감축되었습니다. 이후 이라크전에 돌입한 2004년에는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보병여단 병력을 전쟁에 투입하고 복귀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줄여나갔고 현재 약 3만여 명 수준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이 달라지면서 주한미군 규모도 변해온 셈인데 물론 그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아무 이득 없이 한반도에 주둔할 리 없는데 실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쥔 미국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에 자국군대를 배치하며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를 늘려왔습니다. 우리가 물론 공짜로 혜택을 입은 것도 아닌 게 애초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미군 주둔을 지원하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도 1991년부터 꼬박꼬박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는 한국은 토지, 건물만 제공하고 주둔비용은 일체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 우리의 경제력 상승에 미국이 변심하여 1991년 연 1,000억 원으로 시작한 분담금은 현재 1조원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현행 주둔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진 건 사실인데 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특정 지역에 주둔하는 붙박이 미군을 전략적 상황에 따라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미군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인데 2004년 전국에 흩어진 미군 기지를 모아놓은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가 사실상 ‘중국 견제 맞춤형’으로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일부 감축은 불가피할지 몰라도 전면 철수는 미군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뜻인데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한 트럼프에게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이 있는 것”이라며 맞선 것이나 공화당 일부 상원의원들이 “우리는 한국인 복리후생이 아닌 미국인 보호를 위해 한국에 병력과 군수품을 갖고 있는 것” 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평택 험프리 미군기지 전경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우리나라 손해가 더 크다고 말하는데 우리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미군 주둔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군사력 6위로 거듭났다고 해도 북한 방어에 주한미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자동개입 조항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의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미군은 한반도로 안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면 개입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사시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방위비 분담금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많이 가져도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려면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주한미군이 아니더라도 중국을 견제할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우리에겐 플랜B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남한을 제외한 채 미군의 동북아 방위선을 그리면서 북한의 도발을 가능케 했다는 이른바 ‘애치슨 선언’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데 지금은 평온해도 미군이 한반도를 뜨는 순간 북한이 또 다시 남침을 시도할지 모를 일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총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최대 빈곤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을 ‘미군 주둔 효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주한미군이 안보 리스크를 줄여준 덕분에 삼성,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애치슨 라인

1992년 반미감정 확산으로 미군을 철수시켰던 필리핀 사례를 주목할 필요도 있는데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한 후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에서 중국의 도발은 더욱 잦아졌고, 안보 리스크가 커진 필리핀에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군사적,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체적으로 핵개발도 못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한 우리의 선택은 미군의 주둔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역설적으로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1970년대 우리의 필사적인 자주국방 노력이 지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백지화시키고 한미연합사령부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며 우리가 자주 국방력을 강화해서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키운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째든 그동안의 주한미군 감축 혹은 재배치 논의가 대체로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쌍방이 윈윈(win-win)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