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이야기

최장수 독일총리 메르켈에 열광하는 이유

역사와 여행 2021. 6. 2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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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 세계 언론들은 대부분 ‘올해의 인물’로 ‘무티 리더십’으로 유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선정했는데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스>는 메르켈을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이후 29년 만에 여성 개인으로서 ‘올해의 인물’에 선정했고, 각국의 언론은 이를 계기로 메르켈 리더십 분석을 재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침체했다가 다시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는 유럽의 강국 독일을 이끌어온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과 광폭행보는 단연 눈에 띄는데 지구촌 곳곳의 각종 재해와 갈등, 대립으로 그에 필적할만한 다른 정치인이 부상하기 어려운 최근 상황을 볼 때 메르켈은 당분간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할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은 올해의 인물 선정 배경으로 메르켈이 유럽 재정 위기와 시리아 난민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을 해결하며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높은 평가를 제시했습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표지모델 '메르켈'

메르켈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금융위기로 촉발된 유로화 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유럽으로 몰려드는 시리아 난민들을 향해 대담하게 독일 국경을 열어준 것을 큰 업적으로 소개한 뒤, “메르켈은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 않았다. 리더는 사람들이 따르기 원하지 않은 일을 할 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라고 밝혔습니다. <타임스>은 또 메르켈은 자유세계의 총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자, 유럽 경제를 이끄는 독일의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의 주인공인 메르켈은 1954년 7월17일 통일독일 이전의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 브란덴부르크의 템플린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후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물리학 박사로서 동베를린에서 일했던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2000년 4월 기민당 최초의 여성 당수 겸 원내총무가 된 그는 2005년 9월 총선 승리 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독일 사상 첫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과학자 출신 첫 총리로 선출된 후 승승장구하며 현재 4선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메르켈은 그동안 깐깐한 원칙주의자와 따뜻한 실용주의자 모습을 동시에 보여왔는데 그는 2005년 취임 이후 동부 하이데나우에 있는 난민센터를 찾아 “난민들에 대한 인간적 대우는 매우 중요하다”며 “법과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관용은 없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다른 친구들처럼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호소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출신 소녀에게 “독일이 모든 난민을 받아들일 순 없다”라고 냉정하게 거절하는 면모를 보여, ‘냉혈한’, ‘얼음공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실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면서 원칙과 포용을 겸비한 ‘무티 리더십’은 근래 독일의 현실을 성공적으로 바꾸고 유럽의 대표국가로 위상을 정립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언론은 메르켈 리더십의 특징을 ‘권력을 과시하지 않고서도 정부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는 것’이라며 이를 ‘메르켈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처리즘,레이거니즘이 노조 탄압과 공권력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반면, 메르켈리즘은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리더십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메르켈리즘의 특징으로 첨예한 갈등 이슈를 둔화시키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비전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등 실용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반대 세력과의 첨예한 갈등을 진정시키는 전략을 실천해왔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제 메르켈은 그간 좌파의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등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면모를 보여왔는데 징병제 폐지, 가정 복지 강화, 양성 평등 정책 등 사민당과 녹색당의 핵심 주장을 전격 수용했으며,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 원전 신봉자였던 메르켈의 대변신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메르켈의 리더십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그의 소통능력이고 할 수 있는데 메르켈은 상대의 말을 자르거나 거절하지 않고, 따뜻하게 들어주면서 소통으로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유로존 위기 때도 각국 대표들이 발언을 하게 하면서, 모든 상황을 경청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최대공약수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별장에서 키운 채소로 친구들을 대접하며 농담까지 즐기는 소탈하고 여유 있는 모습에 국민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자식들이 없어도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온화하고 따뜻한 모성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정치 문제도 소통하면서 해결한다.” 롤프 마파엘 독일 대사는 메르켈의 리더십을 “총리는 중요한 정치 현안과 관련해 각 정당의 의견을 경청한다. 시간을 두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도록 기다린다. 현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길 기다리고 그것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는데 야당을 존중하고 설득하는 협상의 리더십은 곧잘 위력을 발휘하곤 했습니다. 메르켈은 2013년 총선 이후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성사시켰는데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연정이었습니다.

그녀의 의사결정 과정은 매우 신속하며 동시에 보여주는 과감한 결단력과 통찰력도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정치적 합의를 통한 정책성과도 눈부신데 2006년 3월 ‘8대 개혁 정책’을 발표한 뒤, 연방제 개혁, 규제 개혁, 에너지 정책, 예산 재정 건전화, 노동정책, 의료보험, 연금 등 광범위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리더십도 발군인데 메르켈은 독일을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 등 27개국이 모인 유럽연합(EU)에서 실질적 좌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구제금융 등 주요 현안마다 메르켈의 결단이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도 신뢰의 주 요인인데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공약을 했던 메르켈은 집권 2년차에 일자리를 대폭 확대해 실업률을 약 3% 이상 낮추면서 세계의 주요 언론들은 매년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로 선정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장례식마저 비난 시위대가 막아섰던 대처와 달리 협상력과 리더십으로 여성 정치 지도자로서 성공을 이끌 수 있는 롤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메르켈은 2017년 9월 4연임에 성공했지만, 연정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2018년 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는데 이후 권력 장악력이 약해지며 힘을 잃는 듯했지만, 작년 코로나 위기가 터졌고 독일이 유럽의 방역 모범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시 위기 속 그의 리더십이 빛나게 됐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취임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유럽 재정위기, 2015년 난민위기 등을 겪으면서도 줄곧 위기 속 리더십을 발휘해 왔는데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독일 역대 최장수 총리로써 아름다운 퇴장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